COFFEE

한국 커피의 역사 (시초는 고종이 아니다?)

로운사주명리 2021. 9. 8. 23:41
반응형

한국 커피의 역사

(시초는 고종이 아니다)

한국 커피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공공연한 말에 의하면
1895년 을미사변 이후 신변 보호를 위해
러시아로 피신한 고종이
처음 마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러시아로 피신한 고종은
한 나라의 수장이지만
타향살이를 하는 것을 보고
이를 안타까워하던 독일 여인 손탁
고종에게 커피를 대접했고
커피를 처음본 고종과 그의 측근은
커피의 색깔이 까맣기에
사약인 줄 알고 두려워했습니다

결국 신하가 먼저 마셔보았으나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오히려 맛있었기에
그때부터 커피를 즐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덕수궁으로 돌아온 고종은
당시 마셨던 커피의 맛을 그리워하게 되었고
덕수궁 내에 서양식 건물 (로마네스크풍)의
'정관헌'을 만들어
커피를 즐겨 마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자신에게 잘해주었던
손탁에게 184평의 땅을 증정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손탁은 호텔을 지어서
최초의 다방 (정동구락부)을
1층에 짓게 됩니다

일제강점기에 이르러서는
서구문물을 일찍 받아들였던 일본인들이
조선에 다방을 여기저기 만들게 되었고
해방 이후에 미군이 우리나라에 오고 나서는
더 많이 커피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여기서 잠깐!

커피의 시초는 고종이 아니다!?


고종이 한국 커피의 시초가
당연시되듯 만연해 있었으나
연구에 의하면, 고종이 한국커피의
시초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최초로 커피가 들어왔다고 일컬어지는
1890년대가 아니라
이보다 30년이나 더 빠른
1860년대에 들어왔다고 하는데요

한국에 부임해 있던 베르뇌 주교가
몇 차례나 걸쳐 홍콩에 원두를 요청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베르뇌 주교가 들여온 원두는
다 합치면 130kg나 되는 양이었고
이는 혼자서 감당했다기엔
말이 되지 않습니다

너무나 많은 양이었기에
베르뇌 주교는 커피를 선교에 활용하여
조선의 양반들과 나누어 먹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이어보자면
일제강점기를 지나 6.25 이후에는
믹스커피가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서식품에서는 베트남에서 로부스타를 들여와
가공을 하여 믹스커피를 만들기에 이르렀고
이는 곧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커피원두를 이용하여
마시지 않았고 1990년대 초반에 와서야
도토루, 쟈뎅에 의해 믹스커피가 아닌
원두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보관방법에 전무했던 당시에는
원두 가루를 그대로 방치했기에
빠르게 산패되었고 커피의 향과 본연의 맛은
사라지고 카페인만 남아 쓰고
맛없는 원두만 남아 대중들 사이에서
별 재미를 못보고 묻히게 됩니다

 

 

올바른 커피원두 보관법

올바른 커피원두 보관법 안녕하세요 ROCKSTAR 입니다! 오늘은 커피원두의 보관법에 대해 포스팅 해보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올라가는 와인이나 위스키와는 달리 커피원두는 시간

leechar1212.tistory.com

이 후에 오늘날 우리나라가 커피공화국이 된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스타벅스를 빼놓을 수 없는데
최초의 스타벅스는 1999년
IMF 이후에 이화여대 1호점을 오픈하였습니다

당시에 다소 어둡고 칙칙한
다방의 분위기와 달리
세련된 인테리어와 로고를 처음 접한
젊은이들은 스타벅스에 열광하게 되고
스타벅스는 말그대로 초대박을 치게 됩니다

그 이후에 커피번, 카페베네가 차례로 오픈하게 되고
카페베네는 사이더스 연예 기획사와
협업하여 연예인들을 마케팅에 유치시키고
대중들에게 적극 홍보하기에 이릅니다

카페베네는 500호점까지 내어
스타벅스를 앞지를 만큼
대성공을 이루게 됩니다

(이후 카페베네는 몰락하게 되지만
이 이야기는 다음에 자세히 다뤄 보겠습니다 )

현재로 와서 우리나라 1인 평균
1년에 600잔을 마신다고 하니
이는 엄청난 수치입니다

커피시장은 아직도 성장세에 이르며
발전가능성이 밝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728x90
반응형